조그마한 장소에 놓인 마이크와 앰프들, 그리고 공간(空間). 상상만으로는 맥락을 쉬이 유추하기 어려운 배치이다. 단순히 비어 있는 곳이라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온 순간 관객들은 이 곳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김두형은 소리를 다루고 있다. 소리를 찾고 소리의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을 공유하는 것이 김두형의 목표 중 하나이다. 이번 작업 <어서오세요. 초대받지 않은> 역시 그가 소리를 탐구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그의 이전까지의 작업들이 목표하는 소리를 나타내는 ‘소리의 조형’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업에서 김두형은 소리를 공간으로 확장하고 장소의 드러남 자체에 주목한다. 이 장소는 가장 원초적인 음악, 즉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의 소리들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근원적이다. 또한 관객들이 모호한 소리들을 인지하고, 그 근원을 추적해볼 수 있으며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그 영향력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기도 하다.
소리는 경계를 넘나든다. 소리의 원인은 자신일 수도, 같은 장소 안의 타자가 내는 것일 수도, 나아가 장소 외부에서 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벽으로 구분되었던 외부와 내부의 감각적 경계는 사라진다. 장소를 단순히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해석하면서 주관과 객관의 경계 역시 허물어진다. 작가와 관객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은 능동적으로 작업에 참여한다. 우연적 상황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조합과 관객들의 다양한 동선, 외부의 생활세계에서 삶이 진행되는 소리들이 얽히는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 날카로운 오토바이 배기음, 선명한 구두 발자국 소리, 대화 소리의 높낮이. 일상에서 쉬이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은 순간적으로 음악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높아졌다 낮아진다.
정해진 규칙과 형식이 없기에 이해보다는 해석이 중심이 된다. 해석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관객이 듣고 경험하면서 작품에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우연적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발 물러서 우연적 상황과 관객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언제 어떤 소리가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는 단지 관객들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주변 소리에 귀기울여 보기를 종용할 뿐이다. 그의 역할은 여기서 끝난다.
이후부터는 외부 상황과 관객의 몫이다. 진동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대화가 울려 퍼진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같은 소리를 듣는 관객들도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왜 이런 소리가 났는지 고심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과거 경험들을 연상할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소리 자체가 주는 리듬감을 느낄 수도, 자신이 만드는 소리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할 수도 있다.
이 곳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 장소는 작가에 속한 것이 아니며, 관객 역시 작가에 속하지 않는다. 작가는 단지 관객들에게 주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할 뿐이다. 관객들은 이 장소를 체험하고 스스로 해석한다. 익숙하지 않을 뿐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다만 주변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가면서 일상의 사물들은 각자에게 새롭게 다가올 것이며, 작가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즉 오랜 기간 소리에 집중하면서 체화된 지각 방식을 이해할 가능성 또한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